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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いいぶんしょう)

오독/김은령

고운남 2010. 3. 6. 08:58

                                                                                             

 

오독 / 김은령

 


사랑이라면

오롯이 저를 다 주어야지

그의 몸속에서 저를 다 녹여야지

죽더라도 혼자서는 절대

못 죽겠다는 듯

서로의 몸통을 꽉 물고

꽃 피우고 잎 틔우는

저 노골적인 기생寄生의 연혁

연리지


連理枝!

너는 저걸 이렇게 읽는다고?

잘못 읽히는 사랑이

어디 저것뿐이겠어


-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06,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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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두 나뭇가지가 중간에 연결 합체되어 한 나무로 자라는 현상을 말한다. 그 원인은 두 나무가 서로 가까이서 자라다가 한쪽 나무의 가지가 이웃 나무를 파고들거나 부러진 가지 부분이 서로 맞닿은 채 성장하다가 맞닿은 부분이 압박을 견디다 못해 껍질이 벗겨지면서 생살이 부딪혀 하나로 이어진다.

 

 먼저 부피성장이 일어나는 부름켜가 이어지고 세포들이 하나로 섞이고 이어지면서 연리의 과정이 완성된다. 연리 된 나무들은 서로 양분과 수분의 통로를 공유하며 광합성도 함께 한다. 한 나무가 죽어도 다른 한 나무가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여 두 나무가 하나로 살아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렇게 그 쓰리고 아픈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연리지를 두고 사람들은 형제간의 돈독한 우애와 효를 말하기도 하고 부부간의 깊고 깊은 사랑과 아름다운 금슬로 읽으면서 사랑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칼릴 지브란의 그 유명한 <예언자>에서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리하여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처럼,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란 구절을 환기한다면 연리지의 저 지독한 사랑은 오독일 가능성이 높다.

 

 ‘죽더라도 혼자서는 절대/ 못 죽겠다는 듯/ 서로의 몸통을 꽉 물고/ 꽃 피우고 잎 틔우는/ 저 노골적인 기생’은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라 할 수 없으며, 사랑으로 명명한다 해도 품격 있는 사랑은 못 된다. 압박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없을 것이며, 강제로 묶어 서로를 유린하며 한 몸이 되는 사랑이란 얼핏 비장미가 흐르고 허상의 감동을 선사하긴 하는데 그 결말은 언제나 비극적이다. 저렇듯 ‘잘 못 읽히는 사랑이 어디 저것뿐’일까만...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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