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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남 2011. 3. 12. 20:59

<김헌식 칼럼>노점상에서 쪼잔, 백화점에서 펑펑 ´왜?

데일리안 | 입력 2011.03.12 11:22 | 수정 2011.03.12 11:26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서울

 




[데일리안 김헌식 문화평론가]2008년 MBC연기대상에서 연기자 박철민은 수상소감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소비심리 가운데 중요한 개념을 말해버렸다. 그의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백화점에서는 10원도 안 깎으면서 노점상에서는 푼돈까지 깎으려 한다며 다그친 고마운 아내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가난한 판매상들에게서는 값을 깎으려 하고 부유한 백화점에서는 하나도 깎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겠다. 노점의 값을 깎는 사람은 나빠 보인다. 박철민 발언의 의도는 약자에 대한 배려다. 백화점에서는 정찰제이기 때문에 깎을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노점상에서는 정찰제가 아니라서 가격을 속인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노점상에서 파는 물건들의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

그럼에도 백화점보다 더 깎거나 더 싼 것을 찾아 이동한다. 꼭 노점상에서 가격을 깎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의 소비행태는 백화점과 노점상에 따라서 분명 달라진다. 심지어 백화점에서는 큰돈을 무감하게 사용하고 노점의 인상된 몇 백원 값을 문제 삼는다. 그렇다면 노점상에서 물건 값을 깎는 사람들은 박철민의 발언의 맥락대로 몰인정하기 때문일까.

더구나 이러한 현상은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미국 심리학자 리처드 H. 세일러의 연구에 따르면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사람들은 근처호텔에서 배달 시킨 맥주에 대해서는 2.65달러를 지불했고, 작은 식료품가게에서 배달시킨 맥주는 1.5달러를 지불했다. 왜 같은 맥주에 다르게 돈을 지불하는 것일까. 결론을 말하면 이는 몰인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회계'(Mental Accounting)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돈의 가치는 같다고 간주한다. 100원은 모든 이들에게 모두 같은 사용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소비행태는 이와 반대로 나타난다. 예컨대 100만원짜리 옷을 할인해서 50만원을 주고 샀다면 사람들은 50만원을 절약했다고 여긴다. 이 옷이 애초에 50만원짜리 였다면 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50만원을 쓰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사람들은 다른 인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백화점의 세일행사가 남발되는 현상을 낳는다.

김밥 집에서 김밥 값이 1000원에서 500원이 올랐을 때는 김밥구매를 주저하고 1000원대의 김밥 집을 찾거나 그 중간인 1200원짜리 김밥을 구매한다. 그러나 20만원짜리 아웃도어의 가격에서 500원이 오른들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20만 200원짜리 옷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트버츠키와 카네만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25달러의 펜을 18달러에 살 수 있다면 15분을 걸어서라도 구매하러 갔다. 455달러짜리 정장을 248달러에 살 수 있다고 15분을 걸어가지는 않았다. 같은 7달러의 가격차이인데 말이다. 새가죽 소파를 사는데는 주저하는 사람이 몇 만 달러 자동차를 사는 데는 주저하지 않는다. 보통 때는 스피커를 사는데 가격을 하나하나 따지는 사람도 자동차안의 스피커에 대해서는 가격지불의 액수가 커진다.

'마음의 회계'란 똑 같은 액수의 돈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각각 다른 회계계정이 있어서 다른 사용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같은 금액도 회계계정에 따라 다른 씀씀이를 상정하고 만다. 같은 금액이라고 적은 액수에서 오르는 것과 큰 액수에서 오르는 것은 사람들에게 다른 각인 효과를 나타낸다.

무거운 물건에 작은 무게의 물건을 올리면 변화를 느끼지 못하지만, 작은 물건에 사소한 양을 얹어도 크게 느끼게 된다. 생필품 가격에 민감한 심리는 바로 이러한 베버-피히너의 법칙에 따른다. 소매상들이 파는 물건들은 몇 천원 안팎의 물건들인데, 그 가격을 올리게 되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백화점의 물건들이 가격을 올리면 무감각해 한다.

돈을 어떻게 입수하게 되느냐에 따라 같은 액수라도 다른 회계계정에 들어가면서 지출된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그 돈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러한 점도 마음의 회계 개념으로 분석할 수 있다. 복권 당첨금 2억 원은 본래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쓴다. 만약 2억원을 10년 동안 노동으로 번 돈이라고 하면 신중한 소비계획을 세울 것이다.

자신의 월급을 모은 돈 500만원과 길에서 습득한 500만원으로 경마를 한 사람들은 그 돈으로 수천 만원을 따다가 잃어도 돈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 자신의 돈으로 경마를 한 사람들이 훨씬 잃은 돈에 대한 '후회의 감정'이 크다. 이 때문에 기업 마케팅에서 고객의 노력에 관계없는 무료서비스는 낭비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복지 정책적 차원의 함의도 도출된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과는 관계없는 복지 혜택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뇌 과학자들은 이러한 소비 현상을 쾌감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독일의 아민팔크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피실험자 18명에게 가상의 월급을 주면서 한 그룹에게는 150만원의 돈을 주고 150만원 짜리 TV를 사게 했다. 다른 그룹에게는100만원의 돈을 주면서 같은 TV를 사게 했다. 사람들의 뇌를 관찰해보니 더 비싼 가격에 TV를 구매하는 사람들의 뇌가 더 흥분했다고 한다. 흥분하는 부위는 전두엽의 복내측전전두피질(VMPFC)이었는데 이 부위는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을 복용할 때 흥분하는 영역이었다.

사람들은 큰 액수의 돈을 사용할 때 강력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가격을 잘 깎지 않는 것은 바로 높은 가격의 상품을 구매했을 때 주는 쾌감도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격에 증가폭에 둔감해진다. 이러한 소비행태는 쾌감을 아예 작정한 경우에는 더욱 커진다. 대형 공연장 상점의 소비품목들은 모두 비싸다. 사람들은 비싸다고 느끼지만 결국 소비하고 만다. 즐거움을 추구하러 왔기 때문이다. 여행지 등에서 일상의 공간에서보다 비싼 물품들을 사게 되는 심리도 마찬가지다. 즐거운 분위기를 돋우는데 비싼 가격은 문제가 덜하다.

더구나 비싼 물품을 자신감 있고 대범하게 살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이러한 쾌감이 더욱 증가한다. 가족이나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인이면서 가장인 경우에는 더욱 이러한 가격에 연연해하면 안 된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점상의 잔돈을 까탈스럽게 깎더라도 공개된 대형 유통점에서는 자신감 있게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자신들의 가치 비중-마음의 회계 계정에 따라서 소비행태는 같은 돈이 다른 지출과 깎음의 행태로 나타난다. 이렇게 마음의 회계를 살피는 것은 충동소비를 줄이고 올바른 소비, 사용가치에 따른 건전한 소비를 지향하고자 함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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