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3303)
곤생돌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합니다. 한 가난한 사내가 있었습니다.힘겹게 살아가던 그에게는 목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그것은 남들이 쉽게 입어보지 못하는고급 외투를 사는 것이었습니다.외투가 전시되어 있는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저 옷을 입고 다닌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사내는 그 외투를 사기 위해철저하게 절약하기 시작했습니다.목이 말랐지만 음료수로 갈증을 달래지 않았습니다.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다른 곳에서오래 머물다 집에 들어가곤 했습니다.심지어 구두 뒤축을 닳게 하지 않으려고조심스럽게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던 그는 마침내그렇게 소망하던 외투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사내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밤늦게 집에 돌아오다 강도를 만났습니다.가진 것..

오산학교의 시작일제강점기 시대에도 인재 양성을 위해교육에 힘썼던 대표적인 학교인 오산학교.오산학교를 설립한 남강 이승훈 선생은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평민 출신으로 가난과 차별 속에서 자랐지만사업 수완이 좋았던 그는 배운 놋그릇 기술을 통해유기 상회를 만들어 오늘날의 돈으로약 700억 원의 자본금을 가진회사로 키웠습니다.막대한 부를 모은 이승훈 선생은 양반 신분을돈 주고 사며 부와 명예 모두를 얻었습니다.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들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은그의 삶을 180도 바꿨습니다."나라가 없는데 내 집이 있으면 뭐 하나.혼을 빼앗겼는데 이 몸이 호의호식하면무슨 의미가 있는가?"이 말을 들은 순간 이승훈 선생은큰 감명과 함께 교육을 통해 후대를 양성해야이 나라에 미래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그리..
때문에’와 ‘덕분에' 행복 디자이너, 행복한 강사로 유명한 어느 분은 하루하루스케줄이 빼곡하게 차 있어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한번은 다음 장소로 급히 이동하기 위해 강연 전에 콜택시를 예약했다. 그런데 강연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서 택시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택시 기사는 서서히 짜증이 쌓여 어떤 사람인지 면상이나 보자는 식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까칠한 표정의 택시 기사에게 그녀가 허겁지겁 달려와 날린 한마디. “내 평생 나를 이렇게 오래 기다려 준 남자는 기사님이 처음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화를 내려던 기사는 오히려 붕 뜬 기분이 되었다. 휘파람까지 불며 그녀를 목적지 까지 데려다 주었다.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그녀의 유머는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기분 좋게 만드는 매..
말을 잘 못하는 정치인 가난한 집안의 19형제 가운데 열여덟째로 태어난 소년은선천적으로 한쪽 귀가 먹고, 안면 근육마비로 입이 비뚤어져 발음이 어눌했습니다. 말을 전달하기도 어려웠고자신이 말을 시작하면 이상하게 보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소년은 그에 개의치 않고 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청년이 되서 정치에 뜻을 품고 선거 유세를 하러 나가게 되었습니다.“여러분, 저는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 때문에 오랜 시간을 괴로워했습니다.하지만, 지금은 저의 언어장애 때문에 제 생각과 의지를 전부 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습니다.인내심을 가지고 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저의 서툰 발음이 아니라그 속에 담긴 저의 생각과 의지에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명예와 부에 목매지 않는다.요즘처럼 물질이 우상이 된 시대, 물욕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는 깨끗하고 고고한 마음을 지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순수했던 사람도 결국에는 탐심과 허영심에 물들어버린다. 이런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얻지 못한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 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것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괴로워하며 고민한다. 왜 나는 저 사람만큼 높은 지위와 풍족한 경제력을 갖지 못했는가?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고민한들 고통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는다. 사실, 해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각을 멈추고 잠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진심..

우산을 쓰다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유관(柳寬)'은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청렴하기로 유명해서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그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었음에도누구도 정승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울타리 없는 초가집에서 평생 베옷과 짚신으로청렴한 삶을 살았습니다.심지어 수레나 말을 쓰지 않고호미를 들고 채소밭을 돌아다니며 스스로밭일을 하기도 했습니다.특히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는데배우고자 온 학생에게는 늘 평등하게 대하고성명과 집안도 묻지 않고 제자로받아주었다고 합니다.이런 그에게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한 번은 장맛비가 오래 계속되어 방안까지빗물이 들어올 정도였습니다.그러자 책을 읽던 유관이직접 우산을 받치며 빗물을 피했습니다.그리곤 옆에서 걱정하는 부인에게말했습니다."우산도 ..
불평도 습관이다. 어느 마을에 늘 불평만 하는 농부가 있었습니다.늘 농부의 눈에는 아름다운 것이 없었고귀에는 좋은 소식이 없었기에 마을에선이미 소문난 투덜이였습니다.비가 조금만 와도 홍수 걱정을 하며 투덜거렸고,햇빛이 비쳐도 가뭄 걱정을 하며 소란을 피웠습니다.해충이 조금만 눈에 띄어도 온 곡식에피해를 보는 것처럼 걱정해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해에는 유례없는 풍작을 이뤘고곡식값까지 껑충 뛰어 마을 사람들이 기뻐했습니다.늘 농부의 불평만 듣던 마을 사람들은풍작만큼은 기뻐할 것 같기에 농부를 찾아가물어 봤습니다."이보게, 올해는 풍년이라 좋겠어?"그러나 농부는 이렇게 투덜거리면서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괜찮긴, 풍년으로 인해서 땅에는몹시 해로울 거야." 항상 불평하는 사람은감사할 일에도 작은 불평..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1761년, 프랑스 위틸호의 선장이었던 파르그는마다가스카르 본섬에서 흑인 노예 60명을다른 섬으로 데려가 기존보다 더 비싼 가격에팔아넘길 계획을 세웠습니다.당시 해당 지역에서는 노예무역을 금지하고 있어파르그 선장은 해상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정규 항해 노선이 아닌 북쪽으로 돌아가는계획을 세우게 됩니다.하지만, 선원들은 그 경로는 돌풍 때문에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돈에 눈이 멀었던 선장은의견을 무시하고 항해를 강행했습니다.결국, 위틸호는 작은 섬의 암초에 난파되는데길이 2킬로미터, 너비 800미터의 이 작은 섬은야자나무 몇 그루만 있을 뿐이었습니다.이 황량한 모래섬은 10월~5월까지 주기적으로위력적인 사이클론이 불어오는 데다가땔감으로 쓸만한 큰 나무도 없어 생존이위태로운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