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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楊枝(ようじ)

고운남 2011. 10. 29. 20:50

                     

 

   
천지의 꽃눈들이 다 잠들어 있을 때 아직 얼음이 채 풀리지 않은 냇가에서 제일 먼저 깨어나는 것이 버들 꽃이다. 어린 시절 그 잔 털 보송보송한 것을 따 손바닥에 올려놓고 흔들며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차면서 ‘오뇨뇨뇨뇨’하고 소리를 내면 마치 털북숭이 강아지처럼 기어온다고 해서 버들강아지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버드나무(柳)는 ‘나무 목(木)’과 ‘무성할 묘(卯)’를 합쳐놓은 말로 ‘버들 양(楊)’자와 더불어 봄의 양기(陽氣)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버드나무의 잎과 껍질이 ‘20세기의 기적의 약’이라고 불리는 아스피린의 원료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아스피린을 개발한 독일의 제약회사인 ‘바이엘’이 세계 곳곳의 버드나무들을 채집해 시험한 결과 우리나라 토종 버드나무가 가장 약효가 뛰어나더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인도의 승려들은 버드나무 가지와 잎으로 치아를 문질러 양치를 했다고 한다. 식당들의 계산대에 비치된 이쑤시개를 ‘요지’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는데 그것은 버드나무 가지, 즉 ‘양지(楊枝)’의 일본식 발음이기도 하다.

길가나 시냇가, 동네 우물가에 심어져 길 가는 나그네나 논일을 하던 농부들이나 물 깃는 아낙들에게 써늘한 그늘이 되어주던 고마운 나무였지만 치렁치렁 늘어진 가지가 마치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 같다고 하여 집안에는 들이지 않았다. 오래 된 버드나무 고목에서 나오는 인광(燐光)이 도깨비불로 보인다는 것도 그 이유였으리라. 실로 우리 어린 시절 여름밤 시냇가에서 본 도깨비불들은 물 버들 고목 등걸 위를 날아다니곤 했었다.

바람에 그 낭창낭창한 허리를 내맡기고 하늘거리는 가지들은 기녀(妓女)를 연상케 해 아무나 꺾어도 되는 길가에 핀 꽃이라는 의미의 ‘노류장화(路柳墻花)’나 오늘날의 ‘화류계(花柳界)’라는 말의 연원(淵源)이 되었다. 하늘하늘한 가지는 ‘유요(柳腰)’라 하여 미인의 가는 허리를 의미했고 버들잎 같은 미인의 눈썹은 ‘유미(柳眉)’라는 말을 낳기도 했다.

버드나무는 슬픔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그 나무를 ‘흐느끼는 나무(weeping willow)’라고 부른다. 블루그래스(bluegrass) 음악(주로 벤조나 만돌린 같은 현악기로만 연주하는 재즈와 블루스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컨트리뮤직의 하나다)의 대표가수라 할 카터 자매(Anita & Helen Carter)는 노래했다. ‘나를 흐느끼는 버드나무 아래 묻어주오(Oh, bury me under the weeping willow tree). 내가 어디 잠들어 있는지 그녀가 알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녀가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도록.’ 지금은 그 음반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찾아내 한번쯤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봄날, 슬픔이 건네는 달착지근함에 살짝이라도 맛들여본 독자라면 말이다.

오래전부터 중국에서는 절류(折柳)라 하여 떠나는 정인(情人)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쥐어 보내는 풍류 습속이 있었다. 꺾은 버드나무 가지가 애틋한 이별의 정한(情恨)을 의미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양반의 족보에 오르고 그들의 선산에 묻힌 함경도 기생 홍랑(洪랑)은 빼어난 시재(詩才)에다 미색까지 겸비한 예기(藝妓)였지만 아무나 꺾을 수 있는 노류장화가 아니었다.

변방으로 벼슬자리 온 선조 대(代)의 특출한 문사였던 고죽(孤竹) 최경창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뒷날 지극정성으로 그의 병 수발을 한 것은 물론이고 그가 죽자 그녀의 미색을 탐하는 사내들을 따돌리려 일부러 자신의 얼굴을 훼손해 추하게 만들기까지 하며 그의 무덤가에 움막을 짓고 삼년의 시묘살이를 한 애틋한 순애보의 주인공이 되었다. 최경창이 전보되어 한양으로 다시 돌아갈 때 차마 이별하지 못하고 고갯마루 까지 배웅하며 지어 바친 시가 이러했다. ‘묏버들 가지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에 /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 밤비에 새 잎 곧 나거든 날(나)인가도 여기소서.’

봄바람에 그 가지들을 일렁이며 버드나무는 떠나가는 정인(情人) 뿐만 아니라 가는 봄과 세월을 서러워하기도 한다. 80년대의 트로트 듀엣 ‘희 자매’는 김소월의 시를 노래로 불렀다. ‘실버들을 천만사(絲) 늘어놓고도 /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흩날리는 솜털들이 성가시다고 그 나무들을 베려하지 말라. 그 나뭇가지라도 있어야 (우리 민요 ‘천안 삼거리’의 노랫말처럼) 무정한 세월의 한 허리를 친친 동여서 매어나 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