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생돌쭌
스키다시&츠키다시 본문
어느 일식집에 가나 일본에서 공부를 했던 필자로서는 참으로 묘한 용어를 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점이 있다. 선전문구나 간판에 스키다시 풍부’라든가 스키다시 맘대로’ 등등.
과연 스키다시’는 일본어 스키다시(好き出し)’인가? 하고 늘 생각해 봤다. 일본서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가 어느 일식집에나 붙어 있으니 신기할 뿐이었다. 저건 분명 츠키다시’인데 하면서….
스키다시(好き出し)’를 억지로 풀이하자면, “좋은 거 내줌”정도나 될까? 하여튼 일본어에는 없는 단어였다. 사전에 보면 츠키다시(突き出し)’로 나와 있다. 일식집이나 술집에서 본 음식이 나오기 전에 입매로 나오는 간단한 음식이나 안주를 뜻하는 말로 오토시(ぉとし)라고도 한다.
한국어가 일본어로 바뀔 때에도 예를 들면, 비빔밥이 비빔빠(파)’로 장가 안간 총각’이 총가(각)’로 되듯이 일정한 법칙이 있다. 우리 발음이 촉음이 많아 힘들기 때문에 일본어에서는 받침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일본어가 한국어로 바뀔 때도 많이 바뀌고 있다.
우리가 일본어를 쉽다고 하거나 심지어 3개월 만에 마스터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학원까지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다른 언어보다 문법이 비슷하고 발음이 쉽다하나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다른 언어에 비해 비교적 쉽다 해야 맞다.
또한 일본어는 한자를 쓰기 때문에 한자를 등한시한 한국의 젊은이들한테는 절대로 쉽지 않다. 정확한 한자를 몰라 아예 히라가나로만 시험지를 쓰는 한국 학생도 있을 정도이다.
일례로 일본서 공부하는 유학생 중 한국학생과 중국학생을 비교해봐도 그렇다. 중국 유학생은 아무리 오래 동안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보냈다 해도 특유한 억양 때문에 금새 중국인인 것을 알 수 있고 발음도 한국 학생들보다는 훨씬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시험만 보면 중국 학생들이 앞서고 당연히 장학금도 더 많은 수의 중국유학생이 타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말은 한국 학생들이 중국 학생들보다 훨씬 우수하지만, 한자 때문에 독해실력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험 볼 때 문장으로 보지, 인터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학금 타기 위해 실시하는 면접에서는 유리할지라도 워낙 성적에서 밀리니 방법이 없는것이다.
츠가 스로 바뀜은 물론 막노동을 의미하는 도가따’가 노가다’로 바뀌어 버려 아예 외래어가 된지 오래다.
이밖에도 바보를 뜻하는 바카’가 첫 음이 격음으로 바뀌어 빠가’가 되는 식이다. 빠가’하면 일본인들은 정확한 뜻을 모르고 아, 하 한국인이구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뜻하는 캉꼬꾸’도 대개는 강고꾸’로 발음하여 감옥’이란 뜻으로 둔갑된다. 그리하여 일본인이 처음 한국인에게 잘하는 질문 중 어데서 오셨습니까? 하면 대개는 강고꾸까라 마이리마시따’하니 이는 감옥에서 (나)왔습니다’란 뜻이 되고 만다.
일본어가 결코 쉬운 말이 아니다. 이런 단점을 익히 파악하고 있던 일제 때도 발음 잘못으로 7천여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푼다’는 마타도어를 일부러 퍼트려 희생양으로 삼았던 사건이다. 이 때도 얼굴 구분이 안됐던 일인들이 바로 쥬-고센 고짓센(15전 50전)’이란 발음을 시켜서 일인과 조선인을 구분했던 것이다. 대개의 조선인들은 츄고센 코짓센’으로 강하게 발음을 하기 때문에 신분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일본서기>에 봐도, 신라 사신이 왜국의 수도 나라(奈良)에 갔다가 발음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도 있다. 즉, 신라 사신이 궁내에서 얘기하는데 이를 우연히 엿듣던 왜국 관리가 신라 사신이 궁녀와 비밀스런 관계를 가졌다’는 말로 알아듣고 정부에 알려 조사를 하였으나 발음이 정확치 않아서 오해가 생긴 것으로 밝혀져 무사했다는 내용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말과 일본어 사이에는 넘지 못할 벽이 있었던가보다.
이러한 오류는 현재도 뉴스로 신문으로 연일 보고 있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토오쿄오’가 도쿄’로 쿄오토’가 교토‘로 오오사카‘가 오사카‘로 싱오오사카(新大阪)‘가 신오사카‘로 탁음이 거의 청음으로 바뀌어 버리고 특히 장음과 단음을 구분하지 않고 단음으로 바뀌어 버린다.
일본어는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언어 중에 하나이다. 우리가 일본을 자세히 모르고 섣불리 판단하고 얕보다가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언어문제로부터도 연유한다. 잘못 인식된 것이 많으면서도 다 아는 것처럼 인식하기에 오류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타테마에와 혼네로 구분되는 일본인들의 이중성을 알아차리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이러한 국민성에 말의 뉘앙스까지 잡아내려면 최소한 일본에서 3년 이상의 시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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