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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생돌쭌
히말라야 눈 덮힌 산 속에 살면서 밤에만 운다는 전설 속의 새"야명조(夜鳴鳥)"를 아십니까?-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십시오.다른일은 세상 사람들에게대신 시킬 수 있지만 생로병사 만큼은 남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지구의 지붕이라 일컫는히말라야(Himalaya)는 고대 인도어인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집(居處)를 의미하는알라야(Alaya)가 결합된 단어로서"눈의 거처" 즉, "만년설의 집"이란뜻을 가지고 있습니다.히말라야의 최고봉인 8848m의 초모랑마(Chomolangma)는 현지어로"세계의 여신"이라는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또한 네팔 사람들은 히말라야를 세계의 정상이란 뜻을 지닌"사가르마타(Sagarmatha)"라고 부릅니다.현재의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1930년도에서 1943년도..
삶에 만족하며 사는 까마귀가 있었다.그런데 어느 날, 백조를 만나면서 회의감이 생겼다. 흰색 자태가 고왔다.“나는 새카맣게 생겼는데 당신은 그리 곱게 생겼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겠네요”라고 하자 백조가 대답했다.“나보다는 두 가지 색을 가진 앵무새가 더 행복하겠지요.”까마귀는 앵무새를 찾아가 같은 말을 했다. 그러자 앵무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행복 했지요. 공작을 만날 때까지는요. 나는 두 가지 색밖에 없는데 수많은 현란한 색을 가진 공작을 보고 나니 실망하게 되고 우울해지더군요.”그 말을 들은 까마귀는 동물원에 있는 공작을 만나러 갔다. 많은 사람이 공작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에워싸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동물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렵사리 만난 공..
한 젊은 부부가 골프를 치는데 부인이 때린 공이거대한 저택의 유리창을 와장창 깨고 쏙 들어갔다.깜짝 놀란 부부는 주인에게 사과를 하려고 그 저택으로 들어갔다.그러자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공은 거실 탁자 위에 있는값비싸 보이는 램프까지 왕창 깨놓은 것이었다.점잖게 소파에 앉아 있던 집주인은 부부에게 골프공을 보여주며 물었다."이게 당신들 공 인가요?"그러자 남편은 재빨리 사과의 말을 하며 돈은 얼마든지 지불하겠다고 나섰다.그런데 놀랍게도 그 남자는 오히려 태연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저는 저 램프속에갇혀 1000년 동안 주인님만 기다리던 지니입니다.두분께서는 저를 자유롭게 해 주셨기 때문에 세가지 소원을 들어 드리겠습니다.단, 마지막 소원을 제게 주신다는 조건하에..."그..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내가 차에 타고 있으면 길을 가는 사람을 욕하고,내가 건널목을 건너고 있으면 '빵빵'대는운전자를 향해 욕합니다.내가 길을 건널 때는 모든 차가 멈춰 서야 하고,내가 운전할 때는 모든 보행자가멈춰 서야 합니다.타인이 무단 횡단하는 것은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경솔한 행동이고내가 무단 횡단하는 것은목숨마저 아깝지 않을 만큼 급한 일이있기 때문입니다.복잡한 버스나 지하철에서나를 밀치는 것은 자신만 편하기 위한이기적인 욕심 때문이고내가 남을 밀치는 것은다른 사람이 밀쳐서 생긴 어쩔 수 없는상황입니다.타인이 새치기하는 것은 파렴치한 얌체 행동이고내가 새치기하는 것은 급하다 보면그럴 수 있는 행동입니다.주말에 여행할 때타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고,나는 짐이 많고 불편해서 자동차를이용해야 합니..
집보다 소중한 가정가정은 집보다 더 따뜻한 이름입니다.'홈(home)'은 정서적인 집으로따뜻한 품을 의미한다면,'하우스(house)'는 물리적인 건물로서의건축물 자체를 뜻합니다.우리의 가족에게는 튼튼한 집도 필요하지만,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이 깃든 '홈'이무엇보다 중요합니다.치유 심리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아 교수는'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이라는 책에서이렇게 말합니다.소위 '비행 청소년'들이 하는 행동은 비슷하지만꼬박꼬박 집으로 들어간다면 그들의 문제도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럼 어떤 청소년이집에 들어갈까요?그건 '가정'이 아이들에게 진심으로관심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가정이 자신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으면아이들은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들이과거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오래 전 "국민학교"라 불렀던 시골 국민학교 졸업식에서 불렀던 졸업식 노래가 생각나고 우연히 알게된 그 노래의 탄생배경이 떠올라서 여기에 옮겨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방송인으로, 記者이자 PD로 이름을 날리던 "김형민"씨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나이드신 분들은 기억이 나시겠지만 탄생배경까지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참고로 읽어보십시오. 1946년 6월 6일 해방된지 겨우 1년. 중앙청에 성조기가 나부끼고 미군 육군 중장이 38도선 이하의 조선 땅을 통치하던 무렵, 군정청 편수국장 직함을 가지고 있던 외솔 최현배가 한 아동문학가를 찾았습니다. “여보 석동. 노래 하나 지어 주시게.” 석동이라는 아호를 가진 이 사람의 본명은 윤석중(尹石重)이었습니다. 석동이라는 아호는 어느 신문에선가 그를..
함께 극복하는 고난오래전 군 복무 시절이었습니다.산을 넘는 행군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평소 등산을 좋아하던 터라 산악 행군 정도는가볍게 해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이등병으로 군대에서 산악 행군은,취미로 즐기던 등산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무거운 완전군장을 하고 산을 오르는데,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대열을 지키면서 빠른 속도로나아갔습니다.첫 행군은 제게 큰 도전이었습니다.숨은 가쁘게 차올랐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져한 발짝 내딛기도 힘들어졌습니다.조금씩 조금씩 뒤로 밀려나더니결국 대열에서 완전히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선임들은 저에게 따뜻한 격려를 하기도 하고호된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더는 버티기 어려웠고,결국 도중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이제 끝이야. 나는 할..
《조선 영조 때 대학자 이재(李縡) 어머니의 훈육》 조선 영조 때의 이름난 학자 이재(李縡)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에게서 양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가 12세가 되던 해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작은 아버지이자 당대의 정치가인 이만성을 찾아갔다. "아버지 없이 자라는 까닭에 이 아이의 앞날이 잘못될까 걱정이 됩니다. 이 아이를 맡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작은 아버지는 괜히 귀한 집 아들에게 매를 들어 안 좋은 일이 생길까봐 거절했으나, 어머니는 끝까지 맡아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결국, 그날 이후로 이재는 작은 아버지의 집에 기거하며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며칠 뒤 이만성이 형수, 즉 이재의 어머니를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형수님, 용서해 주십시오.이 일을 어쩌면 좋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