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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いいぶんしょう)

개사돈/김형수

고운남 2010. 12. 28. 19:41

 

 

개사돈 / 김형수

 

눈 펑펑 오는 날

겨울눈 많이 오면 여름 가뭄 든다고

동네 주막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늙은이들 간에 쌈질이 났습니다

작년 홍수 때 방천 막다 다툰

아랫말 나주양반하고 윗말 광주양반하고

둘이 술 먹고 술상 엎어가며

애들처럼 새삼 웃통 벗고 싸우는데

고샅 앞길에서 온 동네 보란 듯이

나주양반네 수캐 거멍이하고

광주양반네 암캐 누렁이하고

그 통에 그만 홀레를 붙고 말았습니다

막걸리 잔 세 개에 도가지까지 깨뜨려

뒤꼭지 내물이에 성질 채운 주모 왈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 시집『애국의 계절』(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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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보리 풍년 든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여름가뭄이 든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아무튼 눈 오는 남도의 겨울 농한기 한 주막에서 내년 농사 염려하며 말을 섞다가 쌈질이 난 모양이다. 노인네들끼리 지난 구원을 들춘 게 화근이 되어 막걸리 한 잔 걸친 김에 주기와 함께 울컥 분기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눈 펑펑 내리는 날 웃통까지 벗고 싸우는 모습은 둘레의 구경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가관이다.

 

 그런 싸움이야 애당초 험한 꼴로 번질 가능성은 희박하고 종래는 지리멸렬해져서 제 풀에 흐지부지 수습되는 양상으로 전개될 터지만, 그 틈을 타 양쪽 노인네 암캐 누렁이와 수캐 거멍이가 동네 고샅에서 홀레를 붙고 말았다. 상황이 이쯤 되면 서로 멱살잡이 하다가도 힐끔 힐끔 곁눈질해가며 자연히 주먹의 힘도 풀릴 도리밖에 없겠다. 그러다가 한쪽 콧구멍을 막고 묽은 코 한번 팽 푼 다음 소매를 툭툭 털며 서로 화해의 잔이 오고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 노인네들 한 성질 하는데다가 소시적 길바닥에 침깨나 찍찍 내뱉고 다녔던 모양이다. 아니면 혼자 사는 주모에게 낯짝 세우기가 필요한 은근한 연적인지도 모르겠는데 쌈질은 그칠 줄 모르고 막걸리 잔 세 개와 술독까지 깨뜨려가며 한 판 오지게 붙었다. 바깥의 개들은 사랑놀음으로 질퍽하게 붙어먹었는데, 사람이 되어가지고 허접한 시비에 닭싸움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니 말도 안 돼 찌질이들.

 

 보자보자 하니 도분이 나서 더는 못 봐주겠다며 주모가 나섰다. 주모 왈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 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이렇게 눈도 펑펑 내리는 날 졸지에 누렁이와 거멍이 덕에 사돈관계가 된 두 노인네의 쌈질은 보나마나 그것으로 종 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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