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생돌쭌
나이가 들수록 행복한 이유 본문
어느 해 겨울 큰 병을 앓으며 몇 달간 혼자 지낸 적이 있습니다.
방문객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저는 하루에 한 시간씩
조용히 앉아 제 인생을 되짚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선택 미처 사과하지 못한 일
괜히 경쟁했던 순간들 그 시간은 쓰라렸지만 동시에 맑았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저 자신과 진짜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끊임없이 긴장합니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분위기를 맞추고
때로는 본심을 숨깁니다.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도 완전한 솔직함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생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조금씩 연기합니다.
그러나 혼자 남은 순간 그 가면은 필요 없습니다.
노년에 찾아오는 고독은 그래서 축복입니다.
더 이상 증명할 필요도 과시할 필요도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이름 앞에 붙던 직함이 사라져도 괜찮습니다.
박수소리가 멀어져도 괜찮습니다.
남는 것은 직함이 아니라
인격이고 박수가 아니라 내면에 평온이기 때문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은퇴 후 가장 큰 우울의 원인은
경제적 문제보다 역할 상실이라고 합니다.
쓸모없어진 느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착각.
그러나 저는 단호히 말합니다.
역할이 사라진 것이지 존재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우리는 진짜 자신으로 살 기회를 얻습니다.
저는 고독 속에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남에게 가르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한 독서였습니다.
작은 화분을 가꾸며 흙을 만졌고
오래 전 포기했던 바이올린을 다시 꺼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 시간은 타인을 향한 연주가 아니라
제 마음을 위한 연주였으니까요.
내면이 빈 사람은 혼자 있으면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계속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내면이 채워진 사람은
혼자 있어도 풍요롭습니다.
친구가 줄어들고 약속이 적어졌다면
그것은 공허의 증거가 아니라
깊이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혼자 밥 먹는 날이 늘었다면
식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결국 혼자 태어나 혼자 떠납니다.
그렇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요?
고독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고독을 누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도
단단히 설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 곁에는 건강한 인연이 오래 남습니다.
이제 우리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
100년을 살면서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교수님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젊은이도 중년의 가장도
은퇴를 앞둔 동료도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답을 정해 놓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돈이 조금만 더 많아지면, 자식이 성공하면,
남들처럼 인정받으면 햄복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 젊은 날에는 그랬습니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논문,
더 큰 영예 목표를 이루는 순간은 찌릿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곧 좀 더 높은 산이 보였고 또 다시 비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정직합니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원하고 둘을 얻으면 셋을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가 들수록
행복을 다르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무엇을 더 갖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크게 잃을것이 없는 평온한 상태라고.
몸에 큰 병이 없고 당장 빚에 쫒기지 않으며,
마음을 짓누르는 원한이 없다면
그것이 이미 큰 복이라는 사실을 우린 자주 잊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사회의 중 장년층이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라고 합니다.
노후자금 건강 자녀문제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실제 생활수준이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음에도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비교의 범위가 넖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동네 사람과 비교했다면
이제는 화면 속 수많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남의 화려한 일상은 쉽게 보이고
그 이면의 고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위를 보지말고 아래를 보라.
이것은 비겁한 자기위안이 아닙니다.
마음을 지키는 전략입니다.
병실에서 투병하는 이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 전쟁과
재난 속에 놓인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지금 따뜻한 방에서 숨쉬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세삼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는 손가락에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온몸의 건강을 잃습니다.
마찬가지로 아홉가지가 괜찮아도
한 가지 부족함에 매달려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동창모임에서 친구의 사업 성공 이야기를 듣고
지인의 자녀가 대기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쓰립니다.
나는 무엇을 했나 그런 생각이 스며듭니다.
그러나 100년을 살아보니
그토록 빛나 보이는 삶이
반드시 평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자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잠을 설쳤고,
권력자는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자식이 크게 성공한 집안에도
말 못할 갈등은 존재했습니다.
화려함은 종종 불안과 함께 옵니다.
반대로 조용하고 소박한 일상은 겉보기엔
평범해도 속은 단단합니다.
행복을 쾌락의 크기로 재면 우리는 늘 부족합니다.
그러나 고통의 부재로 재면 이미 충분한 날이 많습니다.
오늘 큰 사고없이 하루를 마쳤다면,
사랑하는 이가 무사하다면,
밤에 잠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욕망을 줄이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저는 한 때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씩 내려놓으며 깨닫습니다.
적게 가져도 괜찮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이 평온하다면
그것이 진짜 이익입니다.
어러 분 비교의 독을 끊으십시오.
남의 속도를 기준으로
자신의 인생을 재지 마십시오.
우리는 각자의 계절을 살아갑니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늦가을에 피는 꽃이 있습니다.
늦게 핀 꽃이 더 깊은 향을 내기도 합니다.
행복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고통이 잠잠한 하루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생은 훨씬 가벼워집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인생의 후반전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저는 올해로 102번째 겨울을 맞았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이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거울속에 제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주름이 깊어지고 눈빛은 차분해졌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전반전은 이미 끝났고 나는 후반전을 살고 있구나.
축구경기를 보십시오.
전반전은 체력과 속도로 뛰지만
후반전은 경험과 전략으로 움직입니다.
인생도 같습니다.
젊을 때는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사회적 기대를 위해 달립니다.
인정받고 싶고. 뒤쳐지기 싫고.
남들보다 앞서고 싶습니다.
그러나 후반전은 다릅니다.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아버지 교수 선배라는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그 모든 호칭이 하나씩 제 곁을 떠날 때
비로소 남은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저 자신이었습니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의 역할로 살다가
정작 나 자신으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나이를 먹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되면 당황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겉에 남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배우자도 자식도 친구도 아닙니다.
거울 속에 나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왜 그 사람을 돌보지 않았을까요.
왜 남에게 베풀었던 친절과 배려를
정작 자신에게는 아끼고 살았을까요.
저는 일흔을 넘기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가,
놀랍게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평생 남의 기대에 맞춰 살다보니
제 취향과 욕망은
묻어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끼던 옷을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범한 날에 입었습니다.
누군가의 허락없이 제 마음이 기뻐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지 마십시오.
자식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잠시 우리를 거쳐가는 생명입니다.
그들의 성공이 우리의 구원이 아니고
그들의 선택이 우리의 실패도 아닙니다.
배우자에게도 과도하게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 또한 한 인간으로서 불완전합니다.
서로 기대되 기대어 무너지지 마십시오.
대신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십시오.
그것이 진짜 흙을 만지는 정원일수도 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일 수도 있으며
악기를 배우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원이 아니라
나를 숨쉬게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흔이 넘어
작은 텃밭을 가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기다리는
그 시간은 제게 큰 위로였습니다.
인간도 그렇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천천히 잘 하면 됩니다.
노년은 상실의 계절이 아니라
정화(淨化)의 계절입니다.
내 젊은 날의 경쟁심 과도한 욕망 인정받고자하는 갈증이
하나씩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고요가 들어옵니다.
이것은 쓸쓸함이 아니라 해방입니다.
가면무도회(假面舞蹈會)가 끝나고
가면을 벗은 얼굴로 서있는 시간
그것이 노년(老年)입니다.
혹시 지금 혼자라고 느끼십니까?
혼자일 때 우리는 가장 온전합니다.
관계(關係)의 소음(騷音)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자신의 심장소리가 또렷이 들립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이 남은 인생의 나침판이 될 것입니다.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는
겉보기엔 외로워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누구보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은 끝이 아니라
깊어지는 시간입니다.
이 긴밤 제 이야기가 선생님의 마음에
작은 등불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단단한 나로 서십시오.
남에게 기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걸어왔고
충분히 잘 살아냈습니다.
고요한 자유(自由)를 누리십시오.
그 자유 속에서 당신은
가장 품격(品格)있는 사람입니다.
( 김형석 교수 철학 산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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