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생돌쭌
남편 본문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민음사> 중에서 -
.................................................................................................................................................
아내의 외간 남자를 향한 정신적 사랑과 단 한 번 실수로 육체적 탈선을 행한 아내에 대해 남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비교실험하였다. 결과는 명료했다. 육체적 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정신적 사랑은 아무리 깊게 함몰되었다 해도 남편에겐 뜻하지 않은 단 한 차례의 실수, 심지어 강압적 분위기에서 치러진 육체적 외도보다 그 상처가 크진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육체적 흠집(?)에 대한 분노가 훨씬 노골적이고 선명했다.
그러나 아내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의 실험 결과가 나왔다. 이것이 연애 코드의 남녀 차이고, 본능의 엇박자다.
어쨌거나 정신과 육체 불문하고 아내의 ‘잠 못 이루는 연애’를 상담해줄 남편이란 없다.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은’ 상대가 남편이란 생각만큼은 수긍이 가는데 행여 재미로라도 그런 꼬투리를 보일 수 없는 관계가 부부다.
30여년을 같이 산 어느 부부가 있었다. 아내가 병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겼다. 지금 말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면서 자신은 살면서 3명의 남자를 사랑했었노라고 고백했다. 한 명은 옆집 오빠였고, 또 한 명은 대학 선배, 또 다른 한 명은 지금의 남편이라고.
아무리 죽음 직전의 상황이지만 남편은 좀 서운했을법도한데 배신감이나 원망은커녕 더욱 서럽게 우는 거였다. 아내가 사랑했던 그 세 명의 남자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설령 살면서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일지라도 지구를 한 바퀴 다 돌아봐야 내겐 너 밖에 없노라 한다면 이 얼마나 큰 다행이며 축복인가.
ACT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