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눈동자 곁으로/강은교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 강은교
봄이 오고 있다
그대의 첫사랑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의 맨발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이 밟은 풀잎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이 나부끼는 바람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아침 햇빛이 꿈꾼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반짝이는 소리
곁으로 곁으로 맴도는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의 아침 햇빛의 꿈 엷은 살 속
으로 우리는 간다. 시간은 맨머리로
간다, 아무도 어찌할 수 없다.
그저 갈 뿐, 그러다 햇빛이
되어 햇빛 속으로 가는
그대와 오래 만나리
만나서 꿈꾸리
첫사랑 되리
- 시집《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1999,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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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사랑은 호르몬에 의한 일시적 정신이상 상태’라고 했다. 그렇다면 첫 사랑은 정신 질환의 첫 증세다. 일시적 착란을 두고 사랑이라니, 그 우연과 헛디딤이 평생을 질질 끌고 가다니, 추억하고 기억하며, 그리워하거나 한숨짓거나, 어느 봄날 아롱대다가 꿈결에 빨려들기도 하다니.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한다. 러시아 심리학자 자이가르닉이 오래전 발표한 이론으로 내용은 별 것 아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중간에 그만둘 경우 계속해서 머릿속엔 남은 일을 마저 해내려는 동기가 작용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억을 잘하게 된다는 것이고, 반면 일단 일을 다 마치면 그 일과 관련된 기억들이 쉽게 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어떤 일에 임했을 때 그것에 적응하기까지는 바짝 긴장하는 인지의 불균형 상태가 된다. 그런 긴장 상태는 그 일이 해결될 때까지 지속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긴장이 완화되지 않으므로 그것과 관련된 기억이 유독 생생히 남는 것이다.
그렇듯 미완의 첫사랑도 그것을 접했을 때 엄청난 설렘과 긴장이 생겨남에도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면 당연히 오래오래 기억 속에서 머문다. 물론 심리학의 한 이론에 기대어 그것만으로 첫사랑의 추억을 설명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찬바람 물러가고 아지랑이와 함께 봄기운이 살랑살랑 올라올 즈음이면, 그의 눈동자와 맨발과 그의 맨발이 밟은 풀잎과 풀잎의 바람과 풀잎의 바람 위의 아침 햇빛이 꿈꾼 바로 그 자리에 첫사랑의 화살촉이 와 박히는 걸 어쩌랴. 몽환적으로...
ACT4
As time goes by/ nat king c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