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설날
어머니와 설날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오르고
밖에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 속에서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 이고 오신 하늘 한 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섣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 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 시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2005,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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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 시인의 이 시는 원래 시집 <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문학세계사)에 수록된 것이지만 동생인 김종철 시인과 함께 어머니를 그리는 시편들로만 한 권으로 묶어 공동 발행한 시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에 재수록 된 시다. 두 분 다 신춘문예를 통해 나란히 등단 출판사를 경영하며 문예지를 발행하고 있는 형제시인들인데, 그들의 사모곡과 각자 어머니에 관한 시만 20편씩이나 되니 사후 어머니의 사랑과 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깊이를 다 보지 않고도 짐작할 만하다.
시편들을 통해 그들이 건너온 유년기와 소년기의 삶까지도 어렴풋이 그려지는데, 생활의 궁핍 가운데 어머니의 사랑이 어떻게 전해지고 그 사랑이 그들에게 녹아들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 형제뿐 아니라 우리들 대개가 그럴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때늦은 후회와 그리움은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난 뒤에야 더 절절하고 격렬히 치밀어 오르는 것 아닐까.
김종철 시인의 시 <엄마 엄마 엄마>를 읽다가 지금 부엌에 계신 엄마를 흘깃 보고 다시 들어왔다.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사십이 넘도록 엄마라고 불러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어머니는 싫지 않으신 듯 빙그레 웃으셨다. 오늘은 어머니 영정을 들여다보며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하고 불러 보았다. 그래 그래, 엄마! 하면 밥 주고,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엄마! 하면 씻겨 주고, 아! 아!...엄마! 하면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인 것을 !”
내 집의 섣달 그믐밤도 해마다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어머니의 도마 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철없이 날린 방패연의 꼬리만 가물가물하다. 어머니가 빚어주지 않은 설날을 생각해 본적도 없다. 더구나 그런 어머니가 내 곁에 계시지 않으리란 상상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저 고운 모습 저렇게 삭아 가는데, 어머니 없는 설날은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구나. 설날 아침엔 거친 엄마 손 두 손으로 꼭 잡기나 해야겠다.
ACT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