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いいぶんしょう)

아지매는 할매 되고-염매시장아지매

고운남 2010. 2. 11. 10:05

 

 

 아지매는 할매 되고-염매시장 아지매/ 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 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 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 시집 <사람에 취하여> (2009, 시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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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살면서 이런 저런 인연과 기회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물 스케치를 실명의 부제로 묶어 발간한 시집 가운데 한 편이다. 하지만 그 ‘아지매’의 실명은 구태여 추가로 확인하진 않은 듯하고, 필요치도 않았을 것이다. 일상의 언어로 생생하게 표현한 ‘사건’과 ‘추억’과 ‘풍경’이 정겹고 구수하다. 박기섭의 사설시조와 고은의 ‘만인보’ 등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인물을 소재로 한 시는 늘 이렇듯 흥미롭게 읽힌다.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나름의 독특한 시각으로 건져 올리는 사람냄새와 리얼리티가 이런 인물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시에 등장하는 대구 염매시장 아지매(이미 할매가 된)의 넉넉한 품성과 재치 있는 해학뿐 아니라 시인의 여유와 익살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긴 그렇게 장단이 맞지 않으면 빚어질 수 없는 시다. 마침 시인의 친구인 권천학 시인이 쓴 ‘허홍구를 말한다’란 시가 있기에 부분을 소개한다. 참고로 권천학은 ‘에릭 크립톤’과 동갑내기인 여성시인이다.

 

 “비가 쏟아지는 날 천둥번개가 치면/ 지은 죄업 때문에 문 밖 출입을 삼가 한다는 남자/ 저놈 잡아라하고 찾아올 여자들 때문에/ TV 에는 절대로 출연을 못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남자/ 가슴이 펄펄 끓어서 찬물만 마신다하고/ 속이 달아 설탕을 먹지 않는다 하고/ 단물만 빨아먹고 뱉는 것이 싫어/ 껌을 씹지 않는다는 사람/ 목욕 할 때와 바람피울 때는/ 전화를 못 받는다며 예고하는 싱거운 사람/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있는데도/ 그의 애인이 누구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고/ 끊임없이 호감을 갖게 하는 중년남자/ 머리가 많이 빠지고 술을 좋아하는 시인/ 그의 선한 눈빛에/ 수많은 여자들이 빠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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