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いいぶんしょう)

호박잎 쌈을 먹다/ 이미영

고운남 2012. 5. 12. 10:10

 

 

                                                                                              

호박잎 쌈을 먹다/ 이미영

 

 

재래시장 쪼그린 그늘에

무릎이 허옇게 시린

할머니가 호박잎을 내놓았다

 

이슬 떨치고 일어난 자리마다

어머니의 말간 눈매가

선한 그리움으로 포개진다

 

빽빽한 강된장이 끓어 넘치는

흙 마당 평상 위로

분주하게 불러들이는 품속 사랑

 

한소끔 쪄낸 호박잎에

보리밥 쌈을 싸서

풋고추 된장에 찍어 건네던 여름날

 

저무는 당신 뒤로 하늘가는 붉게 물들어가고

등에 밴 땀은 부채 바람에 식어갔다

 

그랬다

고운 웃음은 묵은 사진첩 한켠으로 밀려나고

잘 있냐는 안부에

목마른 딸꾹질만 나던 여름 저녁

엄마를 닮아버린 세월이 내게 와 안겼다

 

발목으로 무릎으로

가벼운 바람소리가 지나간다.

 

- 시집 『내일도 부는 바람이 있으므로』 (한국문인, 2009)